삭막했던 가슴이 촉촉해지는 남매간의 우애

유전적으로 볼 때, 형제자매의 관계는 부모자식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똑같이 유전자의 절반을 공유하는 사이죠. 하지만 형제자매 사이는 좀 더 복잡합니다. 어릴 때는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 어른이 돼서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어릴 때는 친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멀어지기도 하죠.

자식을 위해 꼭 형제자매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외동'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죠. 하지만 오늘은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에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를 얘기해 드릴게요. 바로 평생에 걸쳐 더욱 강해지는 우애입니다. 

"나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매일같이 메마른 땅 위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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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손수건을 사고 싶어,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 다른 여자애들은 모두 손수건이 있는 게 부러웠다. 아버지는 누군가 돈을 훔친 것을 알고 나와 남동생을 부르셨다. '누가 돈을 가져갔니?' 나는 너무 무서워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말 안 하면 둘 다 벌을 줄 거야.' 그때 남동생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제가 그랬어요.' 동생은 내 죄를 뒤집어썼다. 그날 밤,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그러자 동생이 내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누나, 울지 마. 어차피 끝난 일이야.'

나를 지켜주려고 나섰던 동생의 표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나는 11살, 동생은 8살에 불과했다. 나는 지금도 그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다. 이후 수년이 흘렀지만, 그 일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시내에 있는 직업학교에 가기로 했다.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집 뒤에서 줄담배를 피우셨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애들 둘 다 성적이 좋다는 거지? 아주 우수하다고?'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어떻게 둘 다 지원을 하겠느냐고.' 갑자기 남동생이 나타나 아버지 앞에 버티고 섰다. '아빠, 저는 학교 안 갈 거예요. 책이라면 신물이 나게 읽었어요.' 아버지는 화를 내셨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길에 나가 구걸을 해서라도 너희 둘은 학교에 보낼 거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집마다 다니면서 돈을 빌리려고 하셨다.  

Flickr / Ute

나는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남자는 교육을 받아야 돼. 안 그러면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을 거야.' 대신 내가 학교를 그만둘 각오를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동생이 옷 몇 벌만 챙겨 집을 나가 버렸다. 내 베개 위에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누나, 대학에 합격한 건 쉬운 일이 아냐. 내가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고, 돈을 보내 줄게.' 나는 그 쪽지를 손에 쥐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빌린 돈과 동생이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나르면서 번 돈 덕분에, 나는 대학에서 3학년까지 공부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20살, 동생은 1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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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룸메이트가 와서 말했다. '마을에서 누가 널 찾아왔어.' 마을에서 누가? 왜 나를? 나가보니 동생이었다. 동생은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나는 물었다. '왜 내 동생이라고 말 안 했어?'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 꼴을 봐. 내가 동생이라고 나섰다가 친구들이 누나를 비웃으면 어떡해.'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 주면서 말했다. '남들이 뭐라건 난 신경 안 써.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너는 내 동생이야.' 그는 주머니에서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꺼내, 내 머리에 꽂아 줬다. '보니까 여자들이 다 이런 거 하나씩 하고 다니더라고. 누나도 갖고 싶을까 봐.'

Flick / PhotographyTales Follow

나는 더 이상 침착을 유지할 수 없어, 동생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때 나는 23살, 동생은 20살이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계속 도시에서 살았다. 남편이 몇 번이고 부모님을 우리 집에 모시려 했지만, 두 분은 거절하셨다. 마을을 떠나 도시로 오면 할 일이 없어 힘들 거라면서. 동생도 그렇게 말했다. '누나는 매형네 식구들을 챙겨. 엄마, 아빠는 내가 잘 모실 테니까.'

남편이 공장장으로 승진했을 때, 우리는 동생을 유지보수 관리직에 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견습 일부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생은 케이블을 고치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다가 감전돼서 병원에 실려갔다. 나와 남편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리에 깁스를 한 동생을 보고 나는 울었다. '왜 관리직을 맡으라고 했을 때 거절했던 거야? 관리직은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는데, 네가 고집을 피워서 다쳤잖아. 왜 누나 말을 안 들어?" 

Flickr / Paweł Stempniak

그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매형 입장을 생각해 봐. 이제 막 공장장이 됐는데, 가방끈도 짧은 내가 갑자기 관리직이 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남편의 눈시울이 촉촉히 젖었고, 나는 항변했다. '하지만 네가 못 배운 건 나 때문이잖아!' 그러자 동생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누나는 왜 항상 옛날 얘기만 하는 거야?' 그때 나는 29살이었고, 동생은 26살이었다. 

30살이 된 동생은 같은 마을 출신의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식 자리에서, 주례가 그에게 물었다. "신랑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동생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저희 누나요." 그는 내가 기억도 못 하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희는 다른 마을에 있는 학교까지 매일 2시간을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가 장갑을 잃어 버려서, 누나가 자기 장갑 한 짝을 줬어요.

Flick / Jørgen 'John' Arnor G. Lom

우리는 장갑을 한 짝씩만 끼고 걸었죠. 간신히 집에 도착했을 때, 누나는 손이 얼어서 덜덜 떨면서 포크도 잡지 못했어요. 그날 저는 결심했습니다. 평생 누나한테 잘하겠다고요.' 박수가 터졌다. 하객들이 전부 일어나 나를 돌아봤다. 나는 목이 꽉 막혔지만 간신히 말했다. '제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면 그건 바로 제 동생입니다.' 그 행복한 순간,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됐다. 

여러분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매일 그 사랑을 표현하고 잘해주세요. 별 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Flickr / Mrs. Lim

남매 사이가 이렇게 애틋할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건 물질이 아닙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를 아끼고 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소스:

rose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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