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난 소녀가 마지막으로 건넨 사랑의 한 마디

가끔 나만의 세상에 갇혀서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걸 잊을 때가 있죠.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꼬마 소녀의 도움으로 마음의 눈을 떴답니다. 

집 근처 바닷가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6살이었다. 모든 게 너무 견디기 힘들고, 내 세상이 산산히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차를 몰아 5~6km 떨어진 해변으로 가곤 했다. 그 곳에서 모래성이나 뭐 그런 걸 만들고 있던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의 눈은 바다처럼 파랬다. 

아이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애랑 놀 기분이 아니었던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저 지금 만들기하고 있어요." 나는 무심히 대꾸했다. "그렇구나. 뭐 만드니?" "저도 몰라요. 그냥 모래를 만지면 기분이 좋아서요." '그거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어 신발을 벗었다. 도요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저것 좀 보세요. 엄마가 그러는데 도요새는 우리한테 행복을 가져다준대요." 새는 모래에 내려앉았다. 나는 "행복 끝, 고통 시작"이라고 혼잣말을 한 뒤 걷기 시작했다. 우울했다. 내 인생은 완전히 궤도를 이탈한 것 같았다. 하지만 꼬마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름이 뭐예요?"

"루스. 루스 피터슨이야."

"전 웬디고, 6살이예요."

"안녕, 웬디."

웬디는 깔깔거리며 말했다. "아줌마 재밌어요."

기분이 울적했지만 나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웬디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또 와요, P 아줌마. 또 와서 재밌게 놀아요." 

Twitter/Joaquin Baldwin

그리고 며칠, 아니 몇 주간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해야 할 일은 많고, 보이스카우트 일에 학부모 면담, 아픈 엄마까지 챙겨야 했다. 햇살이 쨍쨍한 어느날 아침,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재킷을 걸쳤다. "도요새가 필요해." 날마다 변하는 바다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냥 걸었다. 다시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고 싶었다. 웬디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다시 나타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같이 놀래요?"

"뭐 하고 싶은데?" 나는 조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몰라요. 아줌마 마음대로요!"

"말 안 하고 가만히 있기는 어때?"

냉소적으로 물었더니 웬디가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건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럼 그냥 산책이나 하자." 아이를 바라보고 그제야 그 작은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를 알았다. "넌 어디 사니?"

웬디는 여름 별장들을 가리켰다. "저기요."

이상하네. 겨울인데 여름 별장이라. "학교는 어디 다녀?"

"전 학교 안 가요. 엄마가 우린 방학이래요." 해안가를 따라 걷는 동안 아이는 쉬지 않고 재잘거렸지만 내 마음은 딴 데 있었다. 집으로 가려고 나설 때 웬디는 오늘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러자 기분이 훨씬 나아져서, 나도 그랬다고 답한 뒤 웃어보였다. 

flickr/Joshua Smith

3주 뒤, 나는 패닉에 빠진 채 바닷가로 달려갔다. 웬디에게 인사조차 건넬 기분이 아니었다.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애 엄마한테 애 좀 집에서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웬디가 내게 다가왔고, 나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미안한데, 오늘은 혼자 있고 싶구나." 웬디는 평소와 달리 창백했고 숨이 가빠보였다. "왜요?"

나는 아이에게로 몸을 돌리고 소리쳤다. "왜냐면 우리 엄마가 죽었거든!" 하느님 맙소사, 내가 왜 어린애한테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까?

"아, 그럼 오늘은 안 좋은 날이네요."

"그래,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어. 저리 좀 가라!"

"그거 아파요?"

"뭐가 아파?" 아이한테도, 나 자신한테도 몹시 화가 났다. 

"죽는 거요."

"당연히 아프지!!!" 나는 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때는 내 슬픔에 빠져 이해하지 못했다. 

한달쯤 지나 다시 바닷가에 갔을 때, 웬디가 없었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그러모아 여름 별장으로 올라간 뒤 현관문을 두드렸다. 초췌한 얼굴의 젊은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루스 피터슨이라고 하는데요. 따님이 보고 싶어서요. 어디 있는지도 궁금하고..."

"아, 네, 피터슨씨. 들어오세요. 웬디가 선생님 얘기를 종종 했어요. 애가 귀찮게 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그랬으면 정말 죄송해요."

"천만에요. 아주 귀여운 아이인데요." 대답하면서 갑자기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웬디는 어디 있나요?"

"지난 주에 죽었어요. 백혈병이었거든요. 애가 그 얘기는 안했나 봐요."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간신히 의자에 앉았다. 내 안에서 뭔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웬디는 이 곳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애가 바닷가로 가자고 했을 때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죠. 여기 와서는 훨씬 좋아보였고, 즐겁다고 한 날도 많았는데... 최근 몇 주간 급격히 상태가 악화됐어요."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웬디가 선생님한테 주라고 한 게 있어요. 찾아볼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웬디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녀는 어린애 글씨로 'p 아줌마에게'라고 적은 봉투를 찾아 건넸다. 봉투를 열자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 한 장이 나왔다. 노란 모래가 깔린 바닷가, 파란 바다, 그리고 갈색 새. 그 아래 "도요새가 행복을 전해줄 거예요."라고 정성들여 적은 글씨가 있었다. 

눈물이 차오르면서 사랑하는 법을 거의 잊었던 마음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나는 웬디 엄마를 끌어안고 "정말 유감이예요."라고 몇 번을 되뇌였고, 우리는 같이 울었다. 

웬디의 그림은 액자에 넣어 서재에 걸어뒀다. 6살 꼬마는 한 문장으로 내게 공존과 용기, 조건없는 사랑을 일깨워줬다. 바다처럼 푸른 눈과 모래 같은 금발의 소녀가 전해준 사랑의 선물이다.  

Twitter/peepholes 2 the world

가슴이 먹먹하네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 말이 마지막 한 마디가 될 수도 있는데 아무도 그 때를 모르니까요. 꼬마 웬디의 마지막 말은 루스에게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되찾아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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