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바토리: 역사 상 가장 잔인한 백작부인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 알버트 피쉬(Albert Fish), 아니면 테드 번디(Ted Bundy) 등. 역사책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악명 높은 이 살인자들에 손에, 지난 수 세기 동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잔인하게 희생됐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하지만, 희생자의 수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이 살인자의 이름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바토리(Elizabeth Báthory). 일명 '피의 백작부인'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바토리는 헝가리 출신으로, 1560년에 태어나 1614년에 눈을 감았다. 한여름에도 오한이 서리게 만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lizabeth Bathory – 16th century deranged serial #killer or victim of betrayal? - https://t.co/4judhbDGK2 pic.twitter.com/UVFjsIXbud
— ancient-origins (@ancientorigins) 25. Februar 2017
사실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이야기는 베일에 싸여있는 터라, 정확한 피해자의 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떤 이는 최대 650명의 어린 소녀들이 희생당했을 거라 추정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15세의 어린 나이로 바토리가 페렌츠 나더슈디(Ferenc Nádasdy) 백작과 정략결혼을 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토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뤄진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1604년에 오토만 제국과의 전쟁으로 남편이 전사했지만, 슬퍼하는 기색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백작의 사망으로, 남편의 부지와 나더슈디 성까지 모두 소유하게 된 바토리.
More #vampire lore for #FolkloreThursday: “Blood Countess“ Elisabeth Báthory https://t.co/NMLDsS7TeY pic.twitter.com/VgXBo6VIfb
— Wunderkammer (@DirkPuehl) 21. April 2016
소위 '공포의 통치'가 시작된 건 이때부터이다. 바토리는 성 안의 일자리를 주겠다고 꾀어내, 주위 농지에서 일하는 소녀들을 성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성 안에 들어간 젊은 여성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결국 성 안에서 무시무시한 살인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퍼졌고, 주민들이 성으로 들이닥쳤다. 그날 성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후 바토리에게 '정신 나간 폭군'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영원히 붙어 버렸다.
Elisabeth Bathory, la Contessa sanguinaria https://t.co/i4S1TCxeTs pic.twitter.com/43eDs50nDH
— Blue Ylith (@YlithBlue) 19. Januar 2017
당시에도 바토리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소녀들의 수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당시 열린 재판에서 바토리는 스스로 변호할 권리가 없던 바토리는 입을 열지 못했고, 대신 하인들을 심문했다. 고문 끝에 하인들의 입에서 나온 숫자는 총 80명. 그들은 이 소녀들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고 죽였다고 실토했다. 이어 그들은 어떻게 소녀들의 옷을 벗기고 감금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자백에 따르면, 성안에 갇힌 희생자들은 채찍질 혹은 구타를 당하고, 칼에 상처를 입어 불구가 되기도 했다. 또한, 발가락 사이나 잇몸을 바늘로 찌르거나, 펄펄 끓는 물로 화상을 입히고, 벌겋게 달아오른 쇠로 지지고, 눈 내리는 곳에 세워두고 벌거벗긴 채 차가운 물을 뿌리는 등의 악랄한 고문을 일삼았다고 한다. 36명에서 80명 사이의 소녀들이 고문당했다고 알려졌고,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Procura-se modelo de nu artístico p finalizar ensaio fotográfico com tema Elizabeth Bathory #campinas #bathory #sp #brazil #nude #foto pic.twitter.com/hYWedhprG8
— Rafael Ortale (@RafaSynn) 27. März 2017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기 때문에, 하인들 증언의 진위는 오늘날까지도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바토리가 소녀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다 사실이다. 다만 그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가 불분명할 뿐. 재판이 진행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또 다른 소문이 퍼졌다. 영원한 젊음을 얻기 위해 바토리가 죽인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고 그 피를 마셨다는 내용의 소문이었다.
Bathing in dragon's Blood. ❣️ pic.twitter.com/C58L0DqbRP
— red riding hood (@cjameson4211) 16. Mai 2017
650명에 달하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있는 일기장이 발견됐다는 말도 돌았지만, 실제 이 일기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번복되고 서로 맞지 않는 증언과 증거가 난무한 가운데, 결국 바토리 백작부인은 유죄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공모자들은 화형에 처해졌고, 바토리는 배식 창만 뚫린 창문 없는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4년 뒤, 그녀는 이 감옥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joannavolavka (cont.) Here's more info!! https://t.co/oejFpl38pn Also, maybe.. Not.. Heroic, but: Countess Elizabeth Báthory. #igglechat pic.twitter.com/qHpF1yrtif
— Sukeban gAy (@SukebanAxxx) 5. Februar 2017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 힘든 바토리 백작부인의 삶은 많은 책과 영화에 영감을 주었다. 그녀의 엄청난 살인 행각과는 별개로, 당시 백작부인이 음모에 빠졌던 것일 수도 있다는 이론이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부지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다른 귀족이나 그 부인들 역시 비슷한 종류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바토리만이 재판정에 세워졌고, 이는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 재판 절차가 굉장히 허술했던 탓에, 불행히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밝혀낼 길이 없다고 한다.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이 없는 만큼, 피의 백작부인의 이야기가 하나의 전설처럼 내려오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