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이 다루지 않은 사실 15가지

아마 역사 상 가장 유명한 여객선은 타이타닉 호일 겁니다. 다만, 별로 좋은 이유로 유명한 건 아닙니다. '절대 침몰할 수 없는' 여객선의 침몰 사건은 전 문학, 영화, 학계가 주목할 만했습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이 호화 여객선의 최후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었던 RMS 타이타닉 호는, 1921년 4월 14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출항해 뉴욕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여정은 첫 번째로, 타이타닉 호의 첫 항해라 더욱 특별했습니다. 두 번째로,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의 마지막 항해라 특별했습니다. 

뉴욕에 정박할 예정이었던 타이타닉 호는 여정 중 커다란 빙산에 부딪혔고, 피하려던 과정에서 배의 옆쪽이 긁혀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550km 떨어진 망망대해, 타이타닉 호에는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피해가 너무 커,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습니다. 2시간 40분 만에 여객선은 대서양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2,200명의 선원과 탑승객 중 712명만 구조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망자를 낳은 침몰 사고였기에, 타이타닉 비극은 역사 상 가장 끔찍한 항해 사고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0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타이타닉 호의 침몰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와 이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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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유명하고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건,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1997년 영화 타이타닉이 아닐까요. 사고를 최초로 영화화 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2월에 영화관에 재개봉된 명작이죠. 면밀한 사전 조사와 진짜 사고와 가깝게 연출해낸 영화지만, 제작진도 놓친 몇 가지 사실이 있답니다. 아래는 영화가 다루지 않은 타이타닉 호와 그의 최후에 관한 사실 15가지입니다.

1. 심부름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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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에는 호텔 벨보이처럼 탑승객의 짐을 옮겨주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잔심부름이나 보조 업무도 맡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아이가 고작 14살. 침몰 사고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단 1명도 없었습니다.

2. 출항 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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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호의 출항 전, 예정된 항해 루트에 빙산이 있다는 다른 여객선들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선장은 이 경고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고 당일 아침, 타이타닉 호의 선원들은 빙산의 정확한 좌표까지 공지받았습니다. 하지만 배의 엔지니어 브루스 이스메이는 이를 무시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빙산의 좌표를 알린 라디오 전신을 그냥 주머니에 구겨넣었다고 합니다.

3. 가장 어린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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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글래디스 ‘밀비나’ 딘은 태어난 지 겨우 10주밖에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 오빠와 함께 타이타닉 호에 올랐습니다. 밀비나 가족은 영국에 있는 숙박업소를 판 뒤,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엄마와 두 아이는 살아남았지만, 밀비나의 아빠는 사고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가장 어리고, 가장 마지막에 구조되었다는 생존자 밀비나는, 2009년 양로원에서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 바닷속 타이타닉 호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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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의 운명은 많은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실제로 가라앉은 타이타닉 호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한 회사는 해저 관광 상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잠수함을 타고 깊은 바닷속에 잠든 타이타닉 호의 난파선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단돈 6200만 원으로, 과학자들의 강의와 더불어 타이타닉 호를 실제로 볼 절호의 찬스입니다.

5. 여객선에 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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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아이들 먼저’ 대피하라 공지되긴 했지만, 모두가 다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타이타닉 호에 탄 109명의 아이들 중 절반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구명정까지 가지 못한 8-9살 아이들이거나, 부모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해 미처 대피시키지 못한 아이들이었습니다.

6. 타이타닉 호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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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처럼 호화스러운 여객선은, 탑승 티켓 가격이 엄청나게 높았습니다. 어느 클래스에 타느냐에 따라 가격이 상이했습니다. 1등석 티켓은 460만 원, 2등석 티켓은 185만 원이었습니다. 3등석 티켓은 3만 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지지만, 당시 노동자 계급의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다고 합니다.

7. 가장 돈이 많았던 탑승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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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의 1등석에는 여러 영국/미국 유명인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당시 이름을 떨치던 부호 중 한 명인 존 제이콤 에스터 4세가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 사업가이자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사의 사장으로, 유럽에서 긴 허니문을 즐기고 임신한 아내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자산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2조 1100억 원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배속의 아이는 살았지만, 그는 사고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8. 'RMS'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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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완성되고 나면, ‘RMS’라는 선호를 얻기 위해 영국 본 항구 앞바다에서 띄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타이타닉 호도 그렇게 RMS라는 선호를 얻었습니다. RMS는 ‘로열 우편 운송 편(Royal Mail Ship)’의 줄임말입니다. 타이타닉 호는 많은 여객도 태운 동시에, 많은 해외 우편물도 실었습니다.

9. 보일러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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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의 프로펠러는 세 용광로에 태우는 석탄으로 돌아갔습니다. 항구에서 떠나던 당시 타이타닉 호는 석탄 6,000톤을 싣고 있었고, 600톤이 난방용으로 쓰일 예정이었습니다. 보일러 룸 관리 직원들은 용광로에 충분한 석탄이 있는지, 엔진은 잘 돌아가는지 신경 써야 했습니다. 대서양의 차가운 얼음물은 보일러 룸에 가장 먼저 차올라, 관리 직원들 중 단 몇 명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0. 사라진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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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터진 그날 밤, 타이타닉 호는 최고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감시할 수 있는 보초소는 두 곳밖에 없었습니다. 별다른 장비도 없었습니다. 망원경은 무슨 이유에 선지 잠긴 선반에 들어 있었습니다. 결국, 사고의 주원인이었던 커다란 빙산은 충돌 겨우 30초 전에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망원경만 있었더라도 사고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11. 구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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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를 관리하던 운송 회사는 배에 구명정을 충분히 싣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실, 타이타닉 호에는 당시 거대 여객선이 의무적으로 실어야 할 구명정 수 보다 더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탑승객의 절반도 구명정을 타지 못했습니다. 각 구명정이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바다에 띄워졌다는 뜻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사고 당시 많은 탑승객은 타이타닉 호에서 내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차가운 물에 띄워진 작은 구명정보다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불이 켜진 큰 배에 남는 게 더 안전할 거라 짐작한 겁니다. 타이타닉 호가 진짜로 가라앉을 거라고 직감한 탑승객들만 급히 구명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 대부분의 구명정은 이미 바다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결국, 탑승객을 다 태울 틈도 없이 구명정이 금세 동나버렸습니다.

12.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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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호의 침몰 속도는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고 학자들은 주장합니다. 타이타닉 호가 완전히 잠수하기까지는 2시간 40분이 걸리긴 했지만, 잠수 후부터 3.8km 아래 해저에 닿기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시속 15km의 속도로 침몰했다는 의미입니다. 

13. 난파선 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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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사고가 나고, 깊은 해저에 가라앉은 타이타닉 호는 수색도 어려웠습니다. 정확히 어디에 난파선이 가라앉았을지 짐작하기가 까다로웠죠. 사고 73년 뒤인 1985년 9월 1일, 캐나다 해안에서 몇 백 미터 떨어진 해역에서 전 해양고고학자 로버트 볼라드와 엔지니어 진 루이스 마이클이 난파선을 발견했습니다.

14. 마음을 바꾼 탑승(예정)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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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타이타닉 호 탑승객 외에도, 탑승 직전에 계획을 바꿔 목숨을 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0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타이타닉 호를 타고 미국에 여행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신을 받을 일이 있어, 속기사가 있는 RMS루시타니아 호를 타고 타이타닉 호 출항 3일 전에 먼저 영국을 떠났습니다.

15. 제2의 타이타닉

마지막 사실은 타이타닉 호의 침몰에만 관련된 이야기지만, 무척 흥미롭습니다. 호주 사업가 클리브 팔머는 몇 년 동안 제2의 타이타닉 호를 조선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래 타이타닉 호를 바탕으로, 현대 기술을 접목할 생각이었습니다. 연료가 다르니 석탄 연기를 뿜는 지붕은 단순히 장식으로만 달 예정이었지만, 선박 내부는 원래 타이타닉 호와 흡사하게 만들 계획이었죠. 와이파이, 카지노는 물론 당신 시대에 유행하던 옷도 승객들에게 제공될 예정입니다. 제2의 타이타닉 호의 첫 항해는 올해 중에 있을 예정이며,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민간 운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RMS 타이타닉 호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으며,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안타까운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사고 뒤로, 선원과 승객들을 위한 많은 새 안전장치들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죽은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였던 만큼,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좋았을 텐데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이 사고를 잊지 않고 안전에 주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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