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청년. 한국 라면으로 받은 명에 훈장.

헉! '오로라의 나라' 북유럽 노르웨이 슈퍼마켓에 가면 깜짝 놀랄 수가 있다. 버젓이 '한국말'로 맛이 구분된 라면을 팔고 있기 때문. 더욱 신기한 것은, 그 앞에서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노르웨이 시민들이 한국어를 어떻게 알아보고 척척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골라 우르르 카트에 이 라면을 담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다. 

무슨 라면이길래? '푸'라면? 오동통 구리구리 동물 라면? 아니다. 바로 '미스터 리(Mr. Lee)’라면이다. 노르웨이에서 '라면왕'이라고 불리는 한국인 이철호 씨가 개발한 당당한 한국 라면이다. 이 '미스터 리' 라면은 20년 동안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무려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말 그대로 노르웨이 '국민 라면'인 셈. 어떻게 한국인이 개발한 라면이 노르웨이의 국민 라면이 됐을까?

한국 전쟁 직후, 1954년 이철호 씨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미군 내 하우스보이(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사람)로 일을 하던 도중 전쟁 포탄에 맞아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심지어 의사는 이철호 씨가 죽은 줄 알고 시체실로 보내버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자신을 아끼던 미군의 도움으로 치료를 위해 선진 의료시설을 갖춘 노르웨이행이 결정되었고, 그는 주저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Youtube /noodlefoodle1035

물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언어도 물론 문화도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당시 노르웨이 땅에 한국인은 이철호 씨 단 1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 머물며 간호사나 주변 환자들을 조르며 3개월 만에 기초 노르웨이어를 모두 익혔다. 그리고 퇴원 후,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전전하다 한 호텔 주방장 눈에 띄어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성실함은 어디서나 빛을 발했다. 성실하고 우수한 직원으로 주방장 눈에 띄어 스위스로 유학까지 갔고 유명 호텔 주방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중 1971년, 한국에서 그를 북유럽 전문 요리사로 초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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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0년대 중반, 당시 한국에서 퇴근 후 을지로 3가 골목 뒤편에 위치한 허름한 가게에서 라면을 맛본 이철호 씨는 그 맛에 홀딱 반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하루빨리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던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로 라면을 수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없는 법. 통관 절차만 3년이 걸렸고, 스프 재료 등 북유럽에서 통과가 되지 않는 성분의 라면은 팔지도 못했다. 그리고 노르웨인들의 반응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혹시나 해서 라면을 맛보라고 주면, '벌레 같다'며 땅바닥에 버리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그러나 이철호 씨의 다년간의 유학과 해외 생활 경험이 여기서 빛을 발했다. 과감히 라면의 현지화를 시도한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한국 라면은 너무 매웠다. 한국의 유명 라면 연구소와 합작으로 라면 개발에 착수한 이철호 씨. 결국 한국 라면의 맵고 강한 맛을 줄이고 노르웨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름진 맛을 더하자, 결과는 대성공! '미스터 리' 라면은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다. 

 

Ich wünsche einen guten Start in die Woche! Auf dem Foto seht ihr die wunderschöne Innenstadt von 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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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스터 리' 라면 표지에는 '소고기 맛' 또는 '닭고기 맛' 등 한글이 꼭 적혀 있는데, 이는 이철호 씨의 고집이었다. 한국스러운 것을 강조해야 더욱 홍보가 될 것이라 생각한 그만의 마케팅 방법이었던 셈.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노르웨이에서는 이러한 '미스터 리' 라면 덕분에 라면 강국은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당연히 알려져 있다. 

라면 사업으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이 된 이철호 씨. 하지만 그는 자신이 번 돈의 대부분을 노르웨이 사회를 위해 기부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을 노르웨이 사회의 공으로 돌리며, 이젠 자신이 사회를 위해 무언갈 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기업인으로, 2005년엔 이민자 최초로 <위대한 노르웨이 인> 국민 훈장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이야기는 노르웨이 공식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노르웨이인 인명 백과사전에도 버젓이 사진과 함께 그의 이력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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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자신의 기업을 노르웨이 최대 식품회사에 판 뒤, 상품 개발에만 집중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 노르웨이 양국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해외 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실제 2012년 언론인으로 일하고 있는 셋째 딸, 이리나 리씨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라면왕 이철호 이야기(노르웨이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를 노르웨이와 한국에서 책으로 출판해 화제가 되었다. 


다음의 영상을 통해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씨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근면 성실함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법이다. 한국 전쟁 직후, 북유럽 노르웨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언어와 문화도 모른 채 맨 손으로 건너온 검은 머리의 아시아인은 끈기와 노력으로 마침내 성공했고, 지금은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었다. 내 현재 상황을 불평하고 안된다고 좌절하지 말자. 이철호 씨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이 해냈듯,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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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가 유독 지치다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어깨를 두드려주며, 이 이야기를 공유해 주자.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모든 꿈쟁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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